• Category Archives 일본야구
  • 일본야구

  • 일본야구, 혹사의 기준에 답한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세밀한 ‘스몰볼’의 일본식 야구와 화끈한 ‘빅볼’의 메이저리그식 야구가 경쟁을 펼친 줄 알았던 시절 말이다.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 와이번스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봉을 쥐었던 롯데 자이언츠는 야구 스타일에서 대척점에 있었다. SK 재임 시절 김 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계가 없는 투수 보직과 혹사 논란은 여전했다.

    다만, 결과가 달랐을 뿐이다. SK 재임 시절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결과만 낸다면 어떤 과정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전병두, 이승호, 정우람, 채병룡 등 당시 SK 주축 투수들은 마치 기계처럼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한 야구 관계자는 “SK 감독일 때도 혹사 논란이 많았지만, 한화에선 당시보다 ‘투수 과부하’가 더 심각해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김성근식 혹사 야구’는 아직 현실 속에 있다. 수술 경력이 있는 신인 투수의 마구잡이식 기용은 ‘어깨 관절 와순 손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감독의 지시대로 매번 마운드에 오른 베테랑 불펜 투수는 2년 연속 100이닝 소화를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했다. 무서운 건 벼랑 끝으로 몰리는 투수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점은 따로 있다. 감독 스스로가 혹사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8월 23일 경기 전 어깨 부상을 입은 ‘영건’ 김민우 질문을 받았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투수는 팀이 필요로 할 때 경기에 나가는 것이다. 혹사의 기준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며 되레 반문했다. 김민우의 부상과 관련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민우의 어깨 손상과 혹사는 관계가 없다는 뜻을 돌려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불펜 투수들은 얼마나 공을 던졌나

    소프트호크 뱅크스의 마무리 투수 사파테. 53경기에 51.2이닝으로 팀 불펜진에서 가장 많은 투구를 소화했다(사진=소프트뱅크)

    소프트호크 뱅크스의 마무리 투수 사파테. 53경기에 51.2이닝으로 팀 불펜진에서 가장 많은 투구를 소화했다(사진=소프트뱅크)

     

    일본에서 고교 때까지 선수로 뛴 김 감독은 ‘일본식 스몰볼’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데이터 야구’와 ‘벌떼 야구’로 포장됐고, 김 감독이 일본 야구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됐다. 하지만, 아니다. 김성근식 야구는 과거 영상에나 찾아볼 수 있는 ‘철지난 옛날 이야기’다. 당장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 기록만 살펴봐도 김 감독과 같은 마운드 운영을 하는 팀은 찾을 수가 없다. 김 감독이 궁금해하는 혹사의 기준은 김 감독이 동경하는 일본 야구의 기록이 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일본 프로야구 각 팀의 이닝 소화 상위권 불펜 투수들의 기록(8월 23일 기준)을 살펴보자. 먼저 이대호가 활약했던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올 시즌 퍼시픽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112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주요 불펜 투수들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소프트뱅크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소프트뱅크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유명한 오오타니 쇼헤이의 소속팀 닛폰햄 파이터스는 퍼시픽 리그 2위다. 113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주요 불펜 투수들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니폰햄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니폰햄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국 투수 이대은이 뛰는 지바 롯데 마린스는 퍼시픽리그 3위다. 114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주요 불펜 투수들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지바롯데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퍼시픽 리그 상위 3팀의 불펜진을 살펴보면 꽤 많은 경기를 소화했음에도 60이닝을 넘긴 불펜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개인 등판 기록을 고루 살펴봐도 3연투 이상을 소화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 경기 이닝 소화에서도 최대한 1이닝 이내로 투구하도록 관리하는 상황이다.

    선발이 약하면 어쩔 수 없다?

    한화 투수 송창식은 웬만한 선발 투수와 비교해도 이닝 소화에서 밀리지 않는다. 불펜 보직임에도 벌써 100이닝에 육박하고 있다(사진=한화)

    한화 투수 송창식은 웬만한 선발 투수와 비교해도 이닝 소화에서 밀리지 않는다. 불펜 보직임에도 벌써 100이닝에 육박하고 있다(사진=한화)

     

    퍼시픽리그의 반대편 리그인 센트럴 리그는 다른 게 있을까. 60이닝을 넘긴 불펜 투수들이 몇몇 있지만, 퍼시픽리그와 크게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다.

    히로시마 카프(센트럴 리그 1위-116경기 소화)

    히로시마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히로시마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 2위-113경기 소화)

    요미우리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요미우리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신 타이거즈(센트럴 리그 4위-117경기 소화)

    한신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한신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 시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김 감독의 주장이 있다. “선발 투수가 못 버텨주니 어쩔 수 없다”는 김 감독의 해명이다. 선발진이 약하니 불펜 투입이 빨라지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선발진이 허약하면 한화와 같이 ‘마구잡이 투수진’을 운영할까. 양대 리그 평균자책 최하위 두 팀의 불펜 기록을 살펴보자.

    오릭스 111경기 소화(퍼시픽리그 평균자책 최하위 4.03, QS 5위 57회)

    오릭스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오릭스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야쿠르트 117경기 소화(센트럴리그 평균자책 최하위 4.90, QS 최하위 51회)

    야쿠르트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야쿠르트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상기 두 팀 모두 일본 프로야구에서 마운드가 좋지 않은 팀이다. 선발진의 퀄리티 스타트(QS, 6이닝 3실점 이하)기록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하지만, 선발진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상황에서도 불펜진의 이닝 소화가 다른 상위권 팀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선발진이 부진하다고, 무리한 퀵후크와 핵심 불펜 투입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0,000구를 넘긴 한화 불펜의 현실

    한화 투수 권혁은 2년 연속 100이닝 소화을 앞두고 있었다. 철완과도 같았던 그도 결국 무너졌다(사진=한화)한화 투수 권혁은 2년 연속 100이닝 소화을 앞두고 있었다. 철완과도 같았던 그도 결국 무너졌다(사진=한화)

     

    이제 한화의 올 시즌으로 돌아가 보자. 한화는 8월 24일 기준 112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팀 평균자책 9위(5.80), 퀄리티 스타트 최하위(17회)에 머물러 있다. 올 시즌 선발진은 443이닝, 불펜진은 561이닝을 소화했다. 유일하게 불펜진의 이닝 소화가 선발진보다 많은 팀이 한화다. 올 시즌 한화 불펜진은 10,006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10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10,0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한화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한화 주요 불펜투수 기록(그래픽=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일본 프로야구팀들의 불펜진 기록을 머리에 새기고, 위 한화 불펜진의 기록을 살펴본다면 얼마나 심각한 마운드 운영인지 곧바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송창식과 권혁의 혹사는 심각한 수준이다. 2년 연속 100이닝 소화를 앞뒀던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24일 1군에서 말소됐다. 24일 경기에도 등판한 송창식이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심수창과 장민재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쉼 없이 공을 던지고 있다.

    심수창은 8월 들어 기괴한 투구 일정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8월 4일 KIA전(3.2이닝)에서 선발 등판한 심수창은 3일 뒤인 7일 NC전(1.1이닝)에서 구원 등판했다. 그리고 이틀을 쉰 뒤 10일 삼성전(2이닝)에서 다시 선발 등판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3일 뒤인 13일 KIA전(4이닝) 선발 투수는 또 다시 심수창이었다. 다시 불펜으로 돌아온 심수창은 15일부터 21일 사이엔 5연투까지 소화했다. 프로야구에선 좀체 상상하기 힘든 기용 방식이었다.

    더 섬뜩한 점은 이제 KBO리그가 막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가을 야구를 위한 승부처라는 이유로 불펜 혹사를 더욱 정당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잇따른 연투와 등판 과다 등으로 관리를 못 받은 불펜진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큰 부상의 위험성도 점점 커진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소중한 선수를 허망하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구단 역시 선수가 소중한 자산인 만큼 비상식적이고도 전근대적인 투수진 운용으로 선수들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앞에서 기술했듯 현대 일본 프로야구에선 김성근식 야구는 어디에도 없다. 한화보다 경기를 더 많이 소화한 팀이 수두룩하지만, 한화 같은 혹사의 느낌을 받긴 어렵다.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김 감독의 얘기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아니 차라리 미신에 가깝다. 2016년 한화의 야구는 한 마디로 ‘국적 불명의 야구’다. 김성근식 야구 역시 일본식이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는 ‘김성근식 야구’일 뿐이다.

    김성근 한화 감독이 질문한 “혹사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겠다. 지난해와 올 시즌 김 감독의 투수진 운영이 바로 혹사의 기준이다.


  • 일본서 ‘단맛 쓴맛 8년’…이승엽 돌아온다

    2004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던 이승엽(35·오릭스 버펄로스)이 8년 만에 국내 프로야구로 복귀한다.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씨는 19일 “승엽이가 일본 생활을 끝내고 내년 한국에 오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18일 소프트뱅크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팀이 져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뒤 오릭스에서 더는 선수로 뛰지 않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달했다. 지난해 12월 이승엽은 오릭스와 연봉 1억5천만엔(22억원)에 2012년까지 계약했는데 올 시즌 성적을 내지 못함에 따라 남은 기간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이 국내에 복귀하면 원 소속팀이었던 삼성에서 뛸 것이 확실시된다. 이춘광씨도 “오릭스의 외국인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 강했고, 지난 5월 승엽이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 뒤 자식 양육 문제로 고민이 있어 귀국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승엽의 국내 복귀 소식에 삼성 구단은 조만간 영입 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송삼봉 삼성 단장은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바로 이승엽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말해 다음달 초 이승엽의 삼성 입단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의 경북고 선배이기도 한 류중일 감독 역시 올해 초 “이승엽을 일본에서 데려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승엽은 오릭스에 입단한 올해 3년 만에 주전 1루수로 뛰었지만 122경기에서 타율 0.201(394타수 72안타 15홈런), 51타점 28득점으로 부진했다.

    2004년 2년간 5억엔을 받고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지바 롯데에 입단한 이승엽은 이듬해 일본시리즈에서 홈런 3개를 쳐내며 지바 롯데의 31년 만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 활약으로 이승엽은 2006년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고, 타율 0.323, 41홈런, 108타점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요미우리와 4년간 30억엔 재계약에 성공한 이승엽은 왼손 엄지 수술과 무릎 통증 등 부상을 겪으며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1·2군을 넘나들다가 결국 지난해 오릭스로 팀을 옮겼다. 이승엽의 일본 통산 8년간의 성적은 타율 0.257, 홈런 159개, 타점 439개다.

    오릭스, 이대호 영입 뜻

    한편 일본의 <데일리스포츠> 인터넷판은 오릭스가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선수가 되는 이대호(롯데)를 영입할 뜻이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일본 진출에 뜻을 두고 있는 이대호는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롯데와 오릭스 두 구단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 이해득실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 일본 프로야구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세밀하고 정교한 일본 프로야구

    일본 프로 야구는 일본 야구 기구(NPB) 산하의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양대 리그 12개 구단, 독립 리그로 이뤄지는 일본 내의 프로 야구 리그를 가리킨다.

    1871년 요코하마의 거주 중인 외국인과 미군함 “콜로라도 호”의 승무원 간 야구 경기를 개최, 이 경기가 일본 최초의 야구 경기다. 1872년 도쿄 대학의 외국인 교사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학생들 사이에 야구가 퍼졌으며, 1936년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이 설립되었다. 이후 1939년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이 ‘일본 야구 연맹’으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일본 야구 연맹’이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나눠졌다.
    센트럴 리그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투수도 타격을 해야 하며, 퍼시픽 리그는 지명타자 제도가 있어 투수는 타격에서 제외된다.
    플레이오프 제도는 2004년에 퍼시픽 리그에 도입했고, 2007년부터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라고 이름을 붙여서 센트럴, 퍼시픽 양 리그에 도입되었다. 센트럴·퍼시픽 각 리그 6구단 중 시즌 상위 3개 구단이 시즌 선두와 2, 3위와 게임 차이에 관계없이 일본 시리즈 진출권을 걸고 플레이오프를 하는 시스템이다. 일본 시리즈 진출 팀은 7전 4선승제로 우승 팀을 가린다.


  • 일본프로야구

    1. 개요

    일본야구기구(NPB)가 주관하는 센트럴 리그(약칭 세리그)와 퍼시픽 리그(약칭 파리그)에 소속된 12개 구단의 프로 경기를 가리킨다.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와는 별도로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같은 몇 개의 독립리그도 존재한다.

    총 12개의 팀이 있는데 이중 마쓰다 자동차가 대주주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소프트뱅크가 모기업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외하면 모기업들 규모가 한국프로야구의 모기업들보다 월등히 작다. KBO 리그의 모기업들을 보자면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각각 대한민국 재계 1,2위를 차지하는 쌍두마차고 LG그룹, 롯데그룹, SK그룹도 재계순위 10위 안에 들고, 그보다 약간 처지는 두산그룹과 한화그룹, KT 역시 재계순위 20위 안에는 든다. NC소프트가 그나마 처지는 정도…

    반대로 일본야구의 모기업은 신문사나 철도회사는 자체로는 일본 재계에 명함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고, 한화그룹과 규모가 유사한 마쓰다가 소프트뱅크와 함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심지어 일본롯데도 연매출액이 한국롯데의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일본에서 야구단을 가진 기업들은 대기업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진이나 한신처럼 야구단이 돈을 벌거나, 오릭스처럼 모기업이 금융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소프트뱅크나 예전 세이부처럼 구단주가 돈을 아낌없이 푸는 곳에서 운영하는 셈.

    모기업의 전체적인 현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운영주체에 변동이 생긴 2012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모기업 변동과정을 도표로 정리한 곳이 있다. 또한 팀 기준의 구별이 아닌 업종 기준으로 구별한 도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업종과 기업규모에 정리가 이루어지지만, 그 사이에 실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정식 인수나 혹은 네이밍 스폰서, 제휴나 공동경영의 형태로 운영에 발을 담갔음을 알 수 있다.

    프로야구 참여 기업 규모로 따지면 한국>일본>대만 쯤 되는 셈. 모기업은 한국보다 작은 반면 운영비는 훨씬 큰데, 이러고도 구단이 굴러간다는 것은 생각보다는 구단 자립도가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팀의 풀네임이 길다보니 보통 일상적으로 말할때나 인터넷에서는 줄여부르는데,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부르는건 KBO리그처럼 기업명이긴 하지만 지역명, 고유명도 섞여있다.[1] 다만, 조금 길게 말할때는 한국과는 달리 지역명+기업명 식으로도 부르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 차이로 한국프로농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답게 간혹 구단과 애니메이션의 콜라보 이벤트도 많이 진행한다. 주로 구단이 속한 지역이 배경인 애니메이션이 주다. 단, 예외적으로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복수 구단에서 콜라보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미국과는 달리 단체 응원단이 있으며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원정을 제외[2]하면 외야석에서 응원한다. 응원단장은 팬들이 모여서 만든 응원단 내에서 뽑고, 악기 연주자는 초빙해서 오기는 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축구 서포터즈와 맥락이 비슷하다. 치바 롯데가 축구식 응원을 접목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 인기

    야구는 올해(2014년) 미쓰비시UFJ 리서치&컨설팅 조사에서도 역시나 일본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스포츠였다.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는 무려 3,128만명에 이르렀다.
    ㅡ 관련 기사

    2017년 기준 아시아에서 평균관중수 2위 리그. (경기당 29,348명, npb 역대 신기록)[3][4]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리그
    MLB를 제외하고 전 세계 어떤 스포츠 리그도 이렇듯 ‘거의 매일 경기를 개최하면서’ 경기당 평균 2만 9천명을 동원하는 리그는 없다.

    1934년 리그 출범 이후 일본의 스포츠에서 야구는 스모와 더불어 일본의 국기(國技)로 평가받았으며 야구의 인기와 맞물려 일본의 프로야구 인기는 상당한 수준이다. 엄청난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다음으로 세계 2위 규모의 프로야구리그이며, 연간 관중동원은 2016년 기준으로 2500만명 수준으로 센트럴리그가 1384만명, 퍼시픽리그가 1113만명 수준이다. 즉, 12개 구단으로 구성된 리그가 구단당 1년에 평균 200만명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고 있고, 이를 경기당 숫자로 환산하면 각 구단이 매 경기 평균 2만 6천명 정도를 동원한다는 얘기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관중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치바 롯데가 2016년 경기당 평균 관중동원이 21,000명 수준인데 이는 같은 해 KBO 관중동원 1위인 두산 베어스를 능가하는 수준. 치바 롯데와 두산이 가지고 있는 배경인구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관중동원력은 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NPB 측에서는 이정도 관중동원도 부진하다면서 라쿠텐, 롯데 등 비슷한 수준의 관중동원을 하는 팀들에게 관중을 좀 더 동원하도록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1993년부터 실제 입장수 기준으로 관중수를 집계하는 J리그와 다르게, 관중수 집계는 2005년부터 실제 입장수대로 집계하는 방식을 사용 중이다.

    2.1.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프로야구의 위기설이 대두되었는데 TV 시청률 및 공중파 중계방송 횟수의 하락, 젊은 층,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이러한 위기설을 부채질 했다. 그러나 TV 중계방송이 줄어든 것은 지상파 중계 한정이고[5] 그에 비해 최근에는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은 있으나 모든 경기를 1회초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중계해주기 때문에 야구팬 입장에서는 시청환경이 훨씬 나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2014년부터 폭스스포츠에서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했다.[6] 관중동원은 소폭이나마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7] 여성팬층의 경우 2013, 2014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경우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팬덤이 생기며 카프조시(カープ女子じょし)[8]라는 신조어 까지 만들어 낼정도로 여성 팬덤의 유입이 적극적이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여성팬 흥행 이후 다른 구단들도 여성팬에게는 유니폼 및 응원도구를 무료로 증정해 준다거나, 여성 전용 좌석 신설, 레이디스 데이 개최로 여성팬 무료 입장 행사를 하는 등 여성팬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2015년 시즌 12구단 중 6구단[9]이 여성관련 행사를 개최한 날 시즌 최다 관객을 유치하는 등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도요게이자이신문에서는 “KBO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을지 몰랐다”며 놀라워 할 정도. 하지만 인터넷으로의 중계 접근성, 서비스 가격 설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센트럴리그는 리그 차원에서 통합 중계를 제공하는 KBO 리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퍼시픽리그보다는 온라인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일단 퍼시픽리그는 6개 구단이 통합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10], 센트럴리그는 요미우리가 <자이언츠 라이브>, 한신이 <토라테레>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히로시마는 지역방송인 RCC가 PPV로 <카프 라이브>를 서비스하는 등[11]완전히 각개전투였으나 2017년부터 주니치, 히로시마, 요코하마 경기도 Sportsnavi, DAZN이 중계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

    야구에 대한 일본 젊은층들 사이의 인식개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프로야구 구단들은 여성 팬덤 유입을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평균관중도 여전히 많지만 아직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야구는 아저씨들이나 보는 스포츠’란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본 아이리서치가 20대 중후반, 회사생활을 시작한지 3년 이내의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젊은 사원들이 회식 때 하기 싫은 이야기 2위에 야구 이야기가 올랐을 정도.[12] 좀 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이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조차 경기당 평균 5만명의 관중을 넘은 것은 세계최초의 개폐식 돔구장에 월드시리즈 우승 버프를 받은 1992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풋볼 겸용구장이던 마일하이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고 창단팀 버프를 받던 1993년의 콜로라도 로키스등 몇몇 예밖에 없다. 심지어는 다저스조차 경기당 평균 5만명을 동원한 적이 없으며 뉴욕 양키스도 팀 역사에 경기당 평균 5만명이 넘는 관중동원을 기록한 건 4번밖에 없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도쿄돔이 개장된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7년동안 매 경기 평균 5만5000명을 동원했다고 발표해왔다. 그러나 구단이 발표하는 구장의 수용능력과 실제 수용능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조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시리즈이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무조건 유료관중을 실수로 집계하도록 되어 있었고 매경기 5만5000명을 동원한다는 요미우리가 정작 일본시리즈에서의 관중동원은 입추의 여지 없이 관중이 들어찼음에도 불구하고 4만7천~8천명 수준으로 발표가 되었기 때문에 일찍이 관중수 부풀리기 의혹이 주로 한신팬들로부터제기되고는 했다. 그러는 한신도 고시엔의 수용능력을 부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2004년까지 요미우리는 이 차이가 일본시리즈 초청권 때문이라고 둘러대왔다. 시리즈에서 초청권만 8000장을 남발하는 전국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는 매진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국구 인기구단의 체면 상(…) 중계화면에도 빈자리가 보이는데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무조건 매진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문제로 촉발된 일본 프로야구 재편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져오던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반성과 시정이 요구 되었고[13] 2005년부터 실제 표를 사서 입장한 관중들만 카운트 하는 것으로 체제을 바꿨다. 따라서 링크된 자료를 볼 때는 2004년 이전의 자료는 무시하거나 약 10~15%정도 심하게는 20~30% 가깝게 깎아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5년 이후로만 볼 것 같으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의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센트럴리그는 적어도 현상유지, 퍼시픽리그는 관중 수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프로야구가 인기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는 일단 프로야구 공중파 중계의 시청률이 떨어진 건 사실이고[14]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이 다양화되고 따라서 예전처럼 프로야구 하나에 인기가 집중되던 시절은 일본에서도 이미 지났다.

    또한 위성방송, 케이블TV의 보급 확대로 다양한 구단의 팬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중계하는 패키지를 구입해서 위성방송 등으로 야구를 즐기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에 공중파에서 중계하는 요미우리 경기의 시청률이 더더욱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인데 메이저리그도 해마다 플레이오프나 월드시리즈 등 공중파에서 중계되는 빅 이벤트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관중동원은 거의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고, 중계권료와 선수들의 몸값은 갈수록 폭등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요미우리와 한신을 중심으로 하는 인기팀들이 모인 센트럴 리그의 관중동원은 최근 10년간 정체에 가까운 수준인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게다가 2010년 일본시리즈가 치바 롯데 마린즈와 주니치 드래곤즈라는 비인기 대진으로 결정나면서 1, 2, 5차전이 공중파 전국 네트워크 중계 없이 지역방송과 위성방송으로만 송출된 것도 이러한 인상을 부채질했다. 퍼시픽리그의 관중동원이 증가하면서 센트럴리그 팀들도 공격적인 투자, 구장 리모델링 및 팬서비스 보강책을 내놓고 있다. 그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2012년 DeNA의 인수 이후 평균관중이 1.8배로 늘어나고 A클래스까지 다시 복귀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요미우리와 한신도 2014년부터 라이벌리를 ‘전통의 일전’으로 공식 브랜드화했다.

    2.2. 현재

    2017년 현재 일본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10대~20대, 여성 사이에서의 인기가 하락한다는 소리는 이제 옛말이라도 먹으라는 듯이 여성층과 젊은층에서도 그 인기가 매우 불어났다.

    물론 이는 2002년을 전후해 한참 주가를 올리던 축구계의 인기부진도 겹쳤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젊은팬들의 야구유입을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히로시마 야구인기 기사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여성팬 공략으로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는 지금 호황 중, 왜?에 의하면 퍼시픽리그는 지난해 관중 1072만 6020명을 유치해 1950년 리그 창설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센트럴리그는 관중 1351만900명으로 1992년 이후 최다. 하지만 관중동원 집계가 정상화된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신기록이다.[16]

    구단 별로는 센트럴리그에서 야쿠르트, 요코하마가 2005년 이후 신기록을 세웠고, 히로시마는 창단 후 첫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퍼시픽리그에서는 라쿠텐, 세이부, 오릭스, 소프트뱅크가 관중 기록을 새로 썼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NPB를 지배한 단어는 ‘위기’였다. 2004년 일본 최대 사철기업인 킨키 일본 철도가 보유하던 프로야구단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운영을 포기했다. 영 좋지 않던 인기도 그렇지만 오사카돔 대관료 등으로 인한 약 15억엔의 대적자로 인해 이 이상 계속 운영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거기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결국 다이에는 파산했다.)으로 다른 팀에 합병될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2004년 위기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긴테쓰 대신 창단하고, 결국 모기업이 파산한 호크스는 소프트뱅크에게 매각되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되는 것으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긴테쓰가 합병해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는 걸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위기는 지속됐다. 센트럴리그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구단 운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위기로 인해 한때 NPB에선 양대리그에서 한 팀 씩을 없애고 10개 구단 단일리그로 운영하자는 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후루타 아츠야를 비롯한 선수협 등의 강한 반발로 이 안은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요코하마는 2011년 인터넷 기업 DeNA에 매각됐다.

    NPB는 경영 면에서 한국프로야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야구단 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엄청난 야구 인기에도 경영수지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센트럴리그, 특히 요미우리와 한신이라는 양대 인기 구단의 영향력이 크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08년 NPB 전체 TV중계권 수입 1억1740만 달러의 90.5%는 센트럴리그 6개 구단의 몫이었다. 그리고 77.7%를 요미우리와 한신이 가져갔으며, 요미우리 1개 구단의 몫은 절반이 넘는 51.8%였다. 메이저리그식 통합 마케팅이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노모 히데오부터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등 수퍼스타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센트럴리그는 2011년, 퍼시픽리그는 2012년부터 관중이 매년 증가 추세다. 전체 수입에서 입장료 비중이 큰 현실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 구단 별로 기발한 마케팅 노력이 눈에 띈다. 오릭스는 올시즌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체크무늬 유니폼을 선보인다. 유니폼 판매를 염두에 둔 마케팅이다. 메이저리그식 마케팅으로 유명한 라쿠텐은 올시즌 개막전을 오후 4시에 치른다. 1968년 이후 최초의 ‘황혼 경기’다. 관중 편의를 우선한 발상이다. ‘시민구단’ 히로시마는 올해 360점의 신상품을 기획했다. 그 중 하나는 55만 엔(약 549만원) 짜리 3대 한정 가죽 소파다.
    • 통합마케팅에도 눈을 뜨고 있다. 퍼시픽리그는 6개 구단에서 전문가를 차출해 한국의 KBOP[17]와 유사한 통합마케팅 조직을 만들었다. 해외 중계권 등 업무를 맡을 예정으로 최근 한국 방송사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 구단 조직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프로야구는 모기업에서 파견된 간부가 구단 대표를 맡아왔다. 대개는 스포츠 비전문가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게 메이저리그식 단장(GM)이다. 1994년 치바 롯데 마린즈가 요미우리의 선수 출신이자 야쿠르트, 세이부 감독 출신인 히로오카 타츠로를 최초의 GM으로 임명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지금은 직함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7개 구단이 GM과 유사한 직위를 두고 있다.
    • 구단 운영과 구장 운영을 일체화시키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요코하마는 올시즌 홈구장 과반수 지분을 취득해 일체 경영에 돌입했다.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가 870억 엔을 투자해 후쿠오카돔을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인수했다. 매년 50억 엔이 넘는 임대료 부담을 경감하고, 구장을 수익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에서였다. 최규덕 롯데 홍보팀장은 “수입 구조상 일본 뿐 아니라 한국 프로 구단도 구장과의 일체형 경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NPB에서 모기업이 구장을 소유한 구단은 모두 6개다. 그리고 라쿠텐과 히로시마는 모기업, 또는 스폰서사가 구장 명명권을 취득하며 야구단 운영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 스포츠전문잡지 <넘버> 고정 칼럼니스트인 요시자키 에이지씨는 “오릭스·긴테쓰 합병 문제가 발생한 2004년은 위기가 고조된 해였다. 그때를 분수령으로 모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 아닌 프로야구에 애착이 있는 전문 프런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금의 마케팅 활성화는 그 성과다. NPB는 한국프로야구의 팬 문화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까지는 ‘선물을 증정하면 손님이 온다’는 수준이다. 프로야구 흥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야구의 인기는 2015년을 기점으로 메이저리그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간단축을 위한 스피드업 제도 도입과 젊은층을 공략하는 서포터문화 확장 , 국가대표 야구를 확장한 사무라이 재팬의 신설등 게임분야에서도 코나미의 프로야구 스피리츠,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등등 다양한 미디어,게임시장등 젊은층들의 문화를 공략하여 그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


    또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오릭스 버팔로즈같은 비인기팀들도 호성적과 더불어 다양한 마케팅 시도로 그 관중수와 인기가 불어나고 있다. 위 영상은 NPB의 대표적인 하위권 팀이며 걸출한 스타선수도 없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혜성같이 나타난 대졸신인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리그 신인 최다 세이브를 달성하는 영상인데, 3만명 이상의 관중이 야마사키의 등장음악[18]에 맞춰 점프를 뛰며 ‘야스아키’를 외치는 일명 ‘야스아키 점프’가 눈여겨 볼 장면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세계 야구계가 전체적으로 가장 큰 과제인 경기시간 단축과 빠른 경기 흐름의 야구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일본에서 야구인기는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시청률 면에서 야구의 사무라이 재팬이 축구의 사무라이 블루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5년 11월 12일, 비슷한 시간대에 열린 두 경기를 비교했을때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 시청률이 좀더 좋게 나왔다는 걸 볼수가 있다.

    경기 방송사
    2015 프리미어 12 예선
    일본 vs 도미니카
    TBS 테레비 지상파 중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일본 vs 싱가폴
    후지TV 지상파 중계
    지방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간토 15.4% 13.2%
    간사이 15.9% 11.4%
    나고야 14.6% 12.8%
    북부 규슈 25.3% 11.1%

    프리미어12 일본야구국대 VS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축구국대 시청률

    또한 2016년 1월에 나온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순위에서도 야구스타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 일본 스포츠스타 인기순위 – 일본인이 사랑하는 스포츠맨…男테니스 니시코리 게이 1위, 야구에선 이치로가 오타니에 51표 앞서

    한편으로는 도쿄, 오사카 등 몇몇 도시에 구단이 집중되어 있는 과거와는 달리 전국 각지의 대도시에 팀이 하나씩 생기면서 분권화 및 지역밀착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1953년 연고제 정착, 1958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다이마이 유니온스와의 합병 이후 12구단 체제가 정립이 된 이후부터는 주부지방의 한 팀, 산요지방의 한 팀을 빼고는 죄다 도쿄 중심의 간토지방과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지방에 몰려있었다. 물론 프랜차이즈 시작은 후쿠오카였으나 나중에 사이타마로 옮긴 팀이라든가 집시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던 팀 등의 예외도 있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다이에가 난카이를 인수해 후쿠오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을 보고 주로 파리그에서 적극적으로 지역 밀착 정책을 실시한 구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4년 ‘공백의 2일’ 파업,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한 이후, 간토권역에는 6팀으로 5팀으로 큰 변화는 없었으나 닛폰햄이 홋카이도에 가서 대박을 치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뺀 나머지 구단들은 연고지 이름을 붙이면서 정체성을 강화했다. 위에서 말한 인기의 하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 하락일 뿐 일본 프로야구 전체의 인기 하락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신 타이거스의 경우에는 198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의 인기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칸사이권은 한때 4팀이나 있었으나 2005년 이후에는 2팀으로 줄은 상태. 게다가 족보가 거시기한 구단 때문에 사실상 한신 타이거스가 오사카권 팬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2.3. 한국에서

    NPB의 위상과 수준, 규모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그 관심과 인기가 다소 낮은 편이다. 그나마 베이징 올림픽과 2009 WBC에서 일본의 우승으로 인해 그 관심이 조금 늘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가려졌다. KBO리그의 타고투저에 싫증난 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대호와 오승환이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우리에게도 관심을 줬으면 좋겠다”“모든 포커스가 메이저 리거들에게만 쏠려 있어서 섭섭하다”“재팬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고, 구원왕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MBC는 메이저리그만 중계해놓고 왜 우리를 섭외했느냐” 라고 대놓고 투덜거렸을 정도….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메이저리그에 과도하게 편중되어있다고 생각하였는지 상당히 속이 상했었던 듯하다.

    이대호와 오승환이 이러한 이유로 그토록 메이저리그 진출을 갈망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외 사례로 이승엽의 경우는 관심을 많이 받은 편이다.시즌 전이었던 2006 WBC에서의 맹활약으로 관심도가 폭발한 상황 +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니혼TV에 중계권료만 100억을 준 SBS Sports에서 KBO 리그보다 적극적으로 중계해 주면서 당시 이승엽의 인지도는 상당했다.

    현재는 중계해주는 곳이 TV에서는 없다 보니까 대부분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야구 팬들은 토토 분석/사설토토 사이트(…)에서 일본 방송을 그대로 중계하는 것을 보고 있다.

    3. 역사

    3.1. 프로야구 창설 이전

    파일:external/blog.japaneseballplayers.com/Horace-Wilson.jpg
    호레이스 윌슨(Horace Wilson)

    1872년 제1번 중학(第一番中学)[21]의 미국인 교사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처음 일본에 전파된 야구는, 1878년 일본 최초의 야구팀인 니이바시 아스레틱 구락부(新橋 アスレチック 俱樂部)[22]가 창단되면서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것은 1896년으로 다이이찌(第一) 고교가 미국인이 이끈 요코하마 아스레틱 구락부(橫浜 アスレチック 俱樂部)를 이기면서 였다. 일본인이 미국인을 꺾었다는 자긍심이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났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야구가 크게 성장하게 된다.

    1920년,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합자회사 일본 운동 협회(合資会社日本運動協会)가 창단되며 일본의 야구리그 창설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운동 협회와 덴슈 야구단[23]이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일본 프로야구리그 창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나니 그것이 바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의 방일이었다.

    3.2. 일본직업야구연맹 시절

    1934년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선수단을 초청하여 전일본군(全日本軍)과 경기를 치른 것을 계기로 요미우리 신문은 전일본군을 모체로 하여 도쿄 교진군(東京巨人軍,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창단하게 된다. 그 후 1936년 당시 요미우리 신문사의 사장인 쇼리키 마츠타로의 주도로 오사카 타이거스(大阪 タイガース, 현 한신 타이거스), 나고야(名古屋, 현 주니치 드래곤즈), 다이도쿄(大東京, 후에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 나고야긴코(名古屋金鯱), 도쿄 세네터즈(東京 セネターズ), 한큐(阪急, 현 오릭스 버팔로즈)가 리그에 참가하여 일본직업야구연맹(JBL; Japanese Baseball League, 후에 일본야구연맹으로 개칭)을 결성한 것이 일본프로야구의 시초다.

    그 후 1937년 고라쿠엔 이글스, 1938년 난카이(南海, 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새로 참가하게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한큐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구단의 영어 이름이 일본식으로 바뀔 정도인 데다가, 유니폼도 군복으로 입을 정도로 리그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패전위기로 치닫게 된 1945년에는 일본프로야구가 아예 열리지 않게 되었다가 종전 후 1946년에 다시 재개되었다. 1946년 골드스타(후에 타카하시 유니온즈와 합병)와 세네터즈(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합류하게 되며 양적 팽창을 거듭하였다.

    3.3. 양대리그 출범

    신생팀이 늘어나면서 양적 팽창을 하던 일본프로야구는 마이니치 신문이 프로야구 참가를 확정하면서 동종업계 라이벌인 요미우리 신문과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당시 난카이 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벳쇼 타케히코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요청으로 인해 이 팀에 입단하게 되면서 요미우리와 그 외 구단의 신경전이 극도로 치달은 데다가(일명 벳쇼 빼앗기 사건), 요미우리가 신규 구단 창단에 인색한 태도를 보이면서 결국 1950년 일본야구연맹이 해체되고 2리그로 분열되어 새로 구단 창단을 반대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24], 주니치 드래곤즈, 다이요 훼일즈(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주도로 센트럴리그를 결성하고, 반대편의 마이니치 오리온즈(현 치바 롯데 마린즈)와 벳쇼 다케히코 빼내기 사건의 피해자인 난카이 호크스 주도로 퍼시픽리그를 결성한다.

    1950년 당시 센트럴리그 쪽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사카 타이거스(1961년부터 한신 타이거스로 변경), 주니치 드래곤즈(도중에 51-53시즌동안 나고야 드래곤즈가 되었다가 54시즌 이후로 다시 원상복귀), 타이요 로빈스(후에 영화사인 쇼치쿠와 제휴하여 쇼치쿠 로빈스가 됨), 다이요 훼일즈, 히로시마 카프(1968시즌부터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변경), 고쿠테츠 스왈로즈(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니시닛폰 파이어리츠가 있었으며, 반대편인 퍼시픽리그는 니시테츠 클리퍼스(1년 뒤 니시테츠 라이온즈로 변경), 긴테쓰,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즈), 마이니치 오리온스, 난카이 호크스, 다이에이 스타즈, 도큐 플라이어스(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구단이 난립하다보니 재정적인 문제로 수많은 구단이 운영포기를 선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니시닛폰 파이리츠가 1년만에 니시테츠 클리퍼스(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합병되는 것을 시작으로, 1954년에 퍼시픽리그에 가입한 다카하시 유니온즈는 1955년 연필회사인 톰보[25] 스폰으로 톤보 유니온즈로, 1956년 다시 다카하시 유니온즈가 되다가 1957년 다이에이 스타즈와 합병되어 다이에이 유니온즈로, 1958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합병하여 다이에이마이니치(다이마이) 오리온즈(현 치바 롯데 마린즈)가 되는 등 5년 연속으로 구단명이 바뀌는 소동이 일어난 것. 정말 정신없이 10여년 동안 통합이 이루어졌다.

    1953년 센트럴리그 쇼치쿠 로빈즈도 후에 다이요 훼일즈와 합병하면서 현재의 12개 구단으로 정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각팀들의 흥망성쇠를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1950년대 – 세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한신이 서로 자웅을 벌이는 가운데 파리그에서는 니시테츠 라이온즈와 난카이 호크스, 마이니치 오리온즈 등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 1960년대 – 1960년 타이요 웨일즈가 갑툭튀하여 우승한 것 빼곤 거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다 해먹었던 시대. 소위 V9(1965~1973)의 초창기였다. 파리그에서는 장훈이 버티던 도에이 플라이어즈와 한큐 브레이브스 등 50년대 약팀이었던 팀들의 분전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50년대의 강자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하락세가 시작된다.
    • 1970년대 – 여전히 세리그에서는 요미우리가 다 해먹는 상황이었지만 1973 시즌 V9의 마지막 시즌을 기점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점차 잃기 시작했다. 이 틈을 노리고 여러 팀이 우승을 하기도 했는데, 특히 1975년, 1979년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1978년의 야쿠르트 스왈로즈 같이 밑바닥을 깔아주던 만년 하위권 팀들의 하극상이 발생했다. 파리그에서는 한큐 브레이브스가 요미우리의 V9 시절 동안 시달린 것을 극복하고 파리그의 절대강자로 떠올랐고, 긴테쓰 버팔로즈가 1979년, 1980년 갑툭튀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은 안개 사건의 여파 등으로 리그가 뒤숭숭 해지는 흑역사도 있었다. 검은 안개 사건 여파로 과거의 강자 라이온즈는 넥센 히어로즈+현대 유니콘스 꼴이 났고, 50년대에 라이온즈와 쌍벽을 이루던 라이벌 난카이 호크스는 1973년 난카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리그 우승을 한 뒤 노무라 카츠야가 롯데 오리온즈로 이적한 1978년 이후 무려 20년 동안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하면서 만년 하위팀으로 전락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요미우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한신 타이거스의 막장화가 시작된다.
    • 1980년대 – 요미우리는 히로시마의 전성기와 주니치 드래곤즈의 도전을 주고 받으며 V9시절의 절대강자의 이미지에서는 살짝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포인트는 1985년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 파리그는 세이부 라이온즈가 1982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대 절대 강팀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오치아이 히로미츠, 랜디 바스, 부머 웰스 등이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는 등 타자 쪽에서 양질의 기록을 냈다. 한편, 한신과 난카이의 암흑기는 80년대에도 계속된다.
    • 1990년대 – 세리그에서는 히로시마의 몰락이 있었지만, 야쿠르트의 약진, 요코하마의 갑툭튀 등 요미우리를 견제할 팀들이 있곤 했다. 파리그에서는 세이부가 여전히 막강한 전력으로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가운데 스즈키 이치로의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편 난카이는 다이에 호크스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90년대 후반까지 비밀번호를 찍다가 1999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암흑기를 벗어난다.

    3.4. 2000년대

    2005년 퍼시픽 리그의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합병하여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었는데, 당시 NPB를 주도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회장인 와타나베 츠네오가 이 외에도 세이부 라이온즈와 치바 롯데 마린즈와 합병하여 10개팀으로 줄이고 단일리그로 환원할 계획을 세우면서[26] 선수협의회[27]가 이에 반발, 2004년 9월 18일과 19일 이틀 간 사상최초로 파업을 하면서(일명 공백의 2일) 일본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NPB는 이 계획을 백지화하고, 대신 라쿠텐이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도호쿠 지방을 연고(정확히는 미야기 현 센다이)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창단하게 된다.

    당시 신흥 인터넷 기업이었던 라이브도어가 참여 계획을 세웠으나 라이브도어의 NTV 주식매수 및 주가조작건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라쿠텐으로 갔는데, 그 후 라이브도어는 각종 비리로 인해 사이트 자체는 망하지 않았지만 NHN(현 네이버)에 인수되어서 호흡기 신세가 되었다. 만약 골든이글스가 라이브도어로 갔다면[28]… 이러한 리그 신생팀 참여 과정의 임팩트 워낙 컸기에 ‘신규참여’가 일본 10대 유행어 중 하나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양 리그간 교류전이 2005년부터 열리게 되는데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간의 실력차가 극명히 드러나면서 ‘인기의 센트럴리그’, ‘실력의 퍼시픽리그’란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2010년 교류전에서는 상위 6개 팀이 전부 퍼시픽리그 팀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퍼시픽리그 사무국 측의 적극적인 마케팅 투자(공식홈페이지를 통한 6개 구단 전경기 인터넷 경기 중계, 팬서비스 투자 확대, 통합 마케팅전략 수립 등)로 인기 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거기에 각 구단마다 지역명을 붙이고, 현지 언론에서도 지역명 부착 구단에 한해 지역명을 꾸준히 표기해주며 ‘우리 동네 야구팀’이라는 애향심까지 더해진 상황이다.[29]

    예외적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지역명이 없는 팀은 단 세 팀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오릭스 버팔로즈가 지역명 붙이길 꺼려하는 팀. 요미우리[30], 주니치[31]야 일본프로야구 초창기부터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팀이니 굳이 연고지명을 붙일 필요가 없고[32], 오릭스는 2005년 오릭스가 킨테츠 버팔로즈를 흡수합병하며 사실상 재창단되어 족보가 거시기한데다, 오사카와 고베를 오가며 시즌을 보내고 있어서 연고지명을 붙이지 않는다[33][34]. 참고로 언뜻 보기에 지역명이 없는 듯한 한신 타이거스의 경우 포항제철 아톰스 같이 기업명에 지역명(오사카(大阪)에서의 한(阪), 고베(神戶)에서의 신(神)[35])이 있는지라 자동 부착한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그동안 정규리그 1위팀에게만 주어졌던 일본시리즈 진출팀을 퍼시픽리그는 2004년, 센트럴리그는 2007년부터 플레이오프 제도인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하여 정규리그 상위 3개팀까지(소위 A클래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일본시리즈 진출팀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정규리그 1위가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나오게 되자 퍼시픽리그는 2006년, 센트럴리그는 2008년 리그 1위 팀에게 플레이오프에서 1승 어드밴티지를 주는 제도로 바뀌게 된다.

    특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이 플레이오프 제도의 대표적인 희생자. 정규리그 1위를 하고도 일본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하는가 하면 2006년부터 1승 어드밴티지가 주어졌을 때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정규리그 2위, 3위를 차지하곤 했다. 근데 사실 소뱅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경기하는 거 보면 심하게 못한다. 팀 전체가 플레이오프 울렁증이 있는 듯. 다행히도 2011시즌에는 극복하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였다.

    3.5. 2011 시즌

    2011 시즌은 전체적으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좀 특이한(?) 시즌이었다. 2011 시즌은 3월에 일어난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 때문에 시즌 개막이 보름 정도 늦춰졌으며 그 때문에 플레이오프나 일본시리즈 같은 중요한 경기들이 다 미뤄지면서 일정 자체가 보름씩 다 늦춰졌다. 특히 일본시리즈는 11월 12일부터 시작인데, 11월 중순이면 돔구장이면 몰라도 야외구장에서 할 경우에는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되었을 정도. 참고로 2010 시즌의 경우 일본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 되면서 10월 30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주니치 드래건스랑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붙게 되어 돔 경기장에서 일본시리즈를 진행하는 바람에 추위 걱정은 없었다.

    또한 다른 지진 여파의 안 좋은 점으로는 일부 용병(요미우리의 브라이언 배니스터, 치바 롯데의 김태균 등)이 방사능을 핑계삼아 도망쳤다는 사실. 배니스터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 제한선수로 묶였고 결국 은퇴했다. 이 때문에 요미우리의 2011 시즌은 망했고, 두산 베어스는 더스틴 니퍼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진의 여파, 대체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난 때문에 2011 시즌 몇가지 규칙이 새로 생겨서 변수가 생겼는데,

    1. 4월, 5월에는 도쿄 전력, 도호쿠 전력 영향하에 있는 구장에서는 낮경기가 진행되었고 5월 3일까지는 돔구장에서 경기조차 못 했다. 이로 인해 도쿄 돔을 홈으로 쓰는 요미우리는 야마구치 현 우베에서 개막전을 치러야 했다.
    2. NPB 공인구를 반발력이 낮은 미즈노사의 통일구라고 불리는 공으로 교체.
    3. 경기 시작 후 3시간 30분이 지나면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

    1번의 경우에는 낮 경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제대로 못한 선수들이 많았고, 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의 경우 아예 돔구장에서 경기를 못 열었으니 불편했고. 특히, 라쿠텐 같은 경우엔 연고지 센다이가 워낙 개막장이 된 상황이라 시즌 시작 후 약 보름동안 아예 다른 구장을 빌려가며 경기를 벌여야 했다. 결국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동의를 받고 홋토모토 필드 고베를 임시로 홈으로 써야 했다.

    2번 때문에 큰 변화가 나타났는데, 쉽게 말해 투고타저의 시즌이 되어 버렸다. 원래는 각 구단마다 사용하는 공이 달랐다. 홈구장의 구단별로 사용하는 공이 달랐다는 이야기. 타자가 홈런을 치기는 어렵고 안타를 쳐도 어거지로 치게 되면서 타율 3할이 넘는 타자가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고 말았다. 공인구를 바꾼 이유는 통일구라는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공을 국내에서 쓰게 함으로써 국제대회 적응을 위해서 바꾼거라지만 정작 결과가 참담했다.

    다만, 여름을 기점으로 인해 더워진 날씨와 체력저하로 투수들이 투구에 고생하는 것과 더불어 공에 익숙해진 타자들이 맹타를 휘둘려 어느 정도 타격 페이스는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결국 양대리그 12팀 합쳐서 3할 타자가 9명 밖에 안 나왔을 정도로,근래의 시즌에 비하면[36] 투고타저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3번의 경우에도 큰 변수가 되었던 것이, 3시간 30분이 지나고 정규 9이닝을 채우게 되면, 새로운 이닝를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연장을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10회까지만 하는 경우가 많았고 11회까지 가는 것도 드물다 보니 12회까지 가서 무승부가 나는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우였다. 덕분에 승패랑 관계없는 무승부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9월 초경에 발표된 일본야구기구에 따르면 CS(클라이막스 시리즈)와 일본시리즈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클라이막스 시리즈 연장은 12회까지, 일본시리즈 연장은 15회까지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시간제한 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 참고로 동북지역에 걸려 있는 전력 사용 제한령은 9월 9일을 기점으로 해제되었다.

    여담이지만 시간 이닝 제한은 한국에서도 2004년까지 적용했다가 실패한 규정이다. 야구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시즌 한국시리즈에서는 이 시간 제한 룰 때문에 무승부가 3번이나 나왔고 덕분에 사상 최초로 8차전도 아닌 9차전에 가서야 결판이 났다. 당연히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다음해 바로 폐지되었다.

    더불어 2011년 시즌 종료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모기업이 TBS 테레비방송국 에서 모바일 게임 업체인 디엔에이(DeNA)[37]로 변경되면서 팀명이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로 바뀌어 2012년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3.6. 2012 시즌

    2012년 시즌도 미즈노사의 통일구를 계속 사용하며 끝나지 않는 전력난 때문에 3시간 30분 룰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2011년 시즌처럼 답답한 투고타저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 타자들이 통일구에 대해서 많이 적응했다는 점이었다. 2011년 시즌 막판에서야 통일구에 적응해서 어느 정도 타자들이 공을 많이 쳐낼 수 있었다.

    센트럴리그에서도 선발투수 예고를 시행한다. 반대했던 한신이 찬성으로 급선회하면서 양대리그가 전면 시행하게 되었다.

    2012년 4월부터 대한민국 스포츠토토에서도 일본 프로야구에 베팅할 수 있게 되었고, 7월에는 일본의 스포츠토토 운영기관인 NAASH(일본스포츠진흥센터)가 일본프로야구, 스모를 토토 베팅 대상에 포함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2012년 현재 일본의 스포츠토토에서는 베팅 대상이 축구 하나였다. 시행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2012년 8월 초 시점에서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각 리그 내의 팀간 전력격차가 드러났다. 센트럴리그는 1위와 6위 간의 게임차가 27게임(특히 1위와 3위 간의 게임차가 14게임)으로 전력격차가 극심했던 반면, 퍼시픽리그는 1위와 6위 간의 게임 차가 10게임으로 즉 전력평준화가 더 잘 되어 있었다.

    3.7. 2013 시즌

    시즌 초반부터 ‘저번 시즌이랑 똑같은 통일구인데 공이 더 잘 뻗는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장타나 홈런이 지난 시즌에 비해 비교적 많이 나왔고, 선수들의 체감상으로도 다른 공처럼 느껴졌다고. 이에 대해 ‘타자들이 통일구에 적응하였다’, ‘통일구로 인해 타자들의 기술이 향상됐다’는 등의 분석이 나왔지만, 시즌 중반 무렵에 접어들어 진짜로 공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버렸다. 기존에 사용하던 통일구가 기준수치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이에 일본야구기구가 미즈노에 통일구의 미세조정을 요구했던 것.

    문제는 공이 바뀌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난 이후로도 진상이 드러나기 전까지 협회가 ‘통일구는 변경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어째서 거짓말을 한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이 사실을 특정구단(주로 요미우리라든가)에게만 알려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뭐, 말이 그렇지 대부분의 구단은 공이 잘 나는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올 무렵부터 공의 반발력 테스트라든가 성분 분석 등으로 공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

    그리고 왕정치가 갖고 있던 일본프로야구 홈런 기록인 55개가 9월 15일, 블라디미르 발렌틴에 의해 49년만에 깨졌다. 한경기에서 56, 57호를 연타석으로 쏘아올리며 일찌감치 기록을 2개나 갱신하면서 이승엽이 2003년 기록한 아시아 기록인 56개도 10년만에 깨지고 말았다. 60호까지 기록하면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시즌 60홈런을 달성하였다.

    3.8. 2014 시즌

    파일:4MHzuzx.gif
    일본프로야구 80주년

    이번 시즌 역시 초반 몇경기를 치른 직후부터 장타가 잘 나온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조사 결과 예상대로 공인구보다 반발력이 높은 위반구가 사용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작년에 같은 문제로 크게 데인 협회가 이번에는 빠르게 조사에 들어가 분석결과를 내놓았지만, 어차피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 발표한 꼴이라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 게다가 어째서 공이 바뀐것인지는 협회조차 알지 못한다고(…). 일단 제조업체인 미즈노 쪽의 미스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 시리즈 우승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돌아갔는데, 소프트뱅크의 우승이 결정된 일본 시리즈 5차전의 마지막 장면이 다소 논란이 되었다. 소프트뱅크가 1점차로 앞서 있는 9회초 한신의 공격. 만루, 원아웃 상황에서 한신의 타자인 니시오카가 1루측 땅볼을 치고, 이게 홈에서 포스아웃을 당한 뒤 1루로 달리던 니시오카의 등에 송구가 맞는 바람에 수비방해로 간주되어 아웃되며 묘한 병살(…)이 나와버린 것. 니시오카가 파울라인 안쪽을 달렸기에 룰 상으로는 아웃인게 맞지만, 일본 최강을 가리는 순간치고는 너무 얼빠진 결말이었다는 평이다.

    또한 일본 시리즈에 진출한 소프트뱅크와 한신 양팀에 각각 한국선수인 이대호와 오승환이 소속되어있어 타자와 투수로서 일본 시리즈에서 맞대결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국 기대됐던 맞대결은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3.9. 2015 시즌

    센트럴리그에서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야마다 테츠토, 퍼시픽리그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야나기타 유키가 각각 트리플 쓰리[38]를 달성했다. 두 팀은 두 타자의 맹활약을 앞세워 모두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201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한다. 2010년 한신 타이거스의 맷 머튼이 달성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아키야마 쇼고가 216안타를 치며 경신하는 등 타격 기록이 풍성하게 나왔던 해.

    2015년 일본시리즈는 다수의 예상대로 퍼시픽 리그를 정복한 소프트뱅크가 압도적인 전력의 두께를 과시하며 다소 가볍게 우승하였다. 소프트뱅크는 구단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리그 우승+일본시리즈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소프트뱅크의 4번을 맡은 이대호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3.10. 2016 시즌

    센트럴 리그 지각변동의 해.

    센트럴 리그에서 최하위로 예상되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Baysball’이라 놀림받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였다. 전통의 강호팀으로 취급받았던 한신 타이거스나 주니치 드래곤즈는 5~6위에서 허우적거리고, 2015년 센트럴 리그 우승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뒤늦게나마 정신 차렸으나 티켓을 놓치고야 말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만 2위 경쟁을 하며 어찌어찌 체면을 지켰다.

    반면 퍼시픽 리그는 지난 시즌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이미 시즌 초부터 강호로 불렸던 팀들이 A클래스에 무난하게 안착했다. 그런데 전반기에 압도적으로 양민학살을 하며 1위를 달리던 소프트뱅크가 후반기에 페이스가 쳐지면서 니혼햄에게 추월당한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

    또한 2016년 시즌은 역대 최고 관중이 입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NPB 홈페이지 통계에 따르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12개 구단은 858경기에서 2498만 1514명을 동원했다. 경기당 2만 9116명으로 역대 최다 관중이다.#

    포스트시즌에 대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2016년 포스트시즌 참고.

    3.11. 2017 시즌

    전년도 우승팀과 전통 명문 구단의 몰락

    센트럴 리그는 작년 우승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전통의 명문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FA로 3명을 영입했지만 구단 수뇌부의 불통과 타카하시 감독의 감독운영으로 13연패를 기록, B클래스를 기록했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시즌 마지막 교진과의 접전 끝에 클라이맥스 막차를 탔으며 한신 타이거스가 선전하며 2위를 기록했다. 이와중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또하나의 역대급 시즌을 기록했는데 종전 구단 역사상 시즌 최다패 94패를 넘어 96패를 기록했다.

    퍼시픽 리그는 지난 시즌 리그,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추락, 초반부터 삽질에 삽질을 보여주며 치바 롯데 마린스와 꼴지경쟁을 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시즌 중반까지 선두경쟁을 벌였지만 시즌 중반 두 팀간 시리즈에서 라쿠텐 스윕패를 당하며 승차가 벌어지더니 3위까지 추락하였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2위를 차지했다. 시즌 후반까지 A클래스 확정이 나지 않았던 세리그와는 달리 시즌 중반 3위 세이부[40]와 4위 오릭스와의 승차가 엄청나게 벌어지면서 A클래스가 확정, 2-3위경쟁, 탈꼴지경쟁의 리그가 되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야쿠르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대급 시즌을 기록했는데 퍼시릭리그 사상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시즌 94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7 시즌은 2016 시즌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관중이 입장해 2500만명이 입장했다. NPB 홈페이지 통계에 따르면 센트럴리그가 14,024,019명을 동원했다. 2017 시즌 최다 관중팀은 한신 타이거즈로 3,034,626명이 입장했다.

    4. 시즌 운영

    4.1.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일본프로야구가 일본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만큼 신인드래프트 회의또한 상당한 인기를 차지한다. 2013년에 열린 2014 신인드래프트의 경우에는 1천명의 관람객과 22.6%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교, 대학 졸업 예정 선수들이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 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신청한 선수에 한해서만 드래프트가 진행된다.[41]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방식은 정말 독특한데, 전세계 어떤 종목에서도 보기힘든 방식인 1라운드 지명권 추첨제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프로야구의 경우에는 1라운드는 지역별 우선지명권이 존재하며, 메이저리그는 전시즌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는데 일본 프로야구는 그런거 없이 추첨운 하나에 드래프트 지명의 승패가 갈린다.

    12개 프로구단은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중, 지역, 전시즌 성적 그딴거 무시하고 아무나 1명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지명팀이 점찍은 선수에 다른 팀이 지명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해당 구단이 단독 지명권을 가지게 되며, 2팀 이상이 1명의 선수를 지목했다면 이때부터 운에 맡기는 추첨식을 시작한다. 지명한 팀들끼리 나와서 제비뽑기를 하며, 이중 당첨된 구단이 해당 선수에 대한 지명권을 가지게 된다. 이후 추첨에서 탈락한 구단들은 다른 선수를 지명할 수가 있는데 이때 또다시 2팀이상 지명한 선수가 등장하면 또다시 지명한 팀들끼리 조추첨을 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매년 신인드래프트는 상당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특히 여러구단이 노릴만한 특출난 신인이 나오는 해는 그 선수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고 최고의 신인을 우승팀이라고 무조건 하위팀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운만 좋으면 노려볼 수 있는 강렬한 도박성과 내심 원하던 팀이 아닌 엉뚱한 팀이 교섭권을 가져가는 경우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표정을 짓는 선수의 모습, 그리고 그 선수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등등 화제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본업인 야구경기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모든 팀이 1라운드 지명을 마칠때까지만 적용되며 2라운드부터는 메이저리그나 한국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성적별 역순을 진행하게 된다.

    12구단 합쳐서 지명자가 120명이 안 될 시, 드래프트로 육성선수를 뽑을 수 있다. 2017년 드래프트에는 9라운드에서 요코하마가 야마모토 유다이를 지명한 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육성선수 드래프트가 진행되었는데, 이 해의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가 8라운드(!)까지 지명하면서 최고로 많이 지명했고, 닛폰햄과 야쿠르트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여담으로 소프트뱅크는 드래프트 5라운드까지만 지명하고 패스했는데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는 6라운드까지 지명하며 육성선수를 더 많이 뽑았다. 육성선수 드래프트까지 포함한 최후의 지명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선수 8라운드 지명자 아라이 소타.

    이러한 방식때문에 신인드래프트에서 종종 보기드문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노모 히데오는 세이부 라이온즈, 주니치 드래곤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제외한 8개구단이 모두 1라운드 지명하였고 추첨식 결과,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좋은 점만 있는것은 아닌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막강한 인기와 (뒷돈 제공까지 가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망주들이 “요미우리 아니면 프로야구 안한다!”라고 지명을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선수가 도하 참사당시 오승환을 털어먹었던 초노 히사요시.

    2017년 드래프트에는 키요미야 코타로라는 대형 신인이 나오는데 일본 럭비계의 레전드이자 대학, 실업팀 감독을 역임한 아버지를 둔 스포츠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도쿄의 야구 명문고 와세다실업고(오 사다하루의 모교)를 나와서 1학년 때인 2015년 여름 고시엔에서도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하고 고교 3년 통산 111홈런을 기록하는 등 홈런타자 후보생으로서 야구팬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벌써 전구단 지명이니 최소 10구단 지명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 다만 종목은 다르지만 스포츠계의 레전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버지의 간섭이 여간 심한게 아닌데 “우리 아들을 믿고 맏길만한 시스템과 육성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구단의 지명은 거부하겠다.”, “우리 아들은 메이저리그를 지망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팅을 허용하지 않는 구단의 지명은 사양하겠다.”, “만약 맘에 들지 않는 구단이 지명할 경우 프로 입단을 거부하고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보내겠다[45].” 등등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프로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신인이 이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경우도 드문 일이고 웬만한 신인 같으면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면 구단 측에서도 기존 선수들과의 팀워크를 고려해서 “그럼 즐”하고 관심을 끌 상황인데 장타 포텐셜 + 화제성, 스타성 풍부라는 점에 이끌린 구단들이 기요미야 부자를 일부러 찾아와서 “그럼 저희구단의 시스템과 육성계획을 소개할 테니 한번 들어보시죠”하면서 무려 10개구단이 고등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벌써부터 팀 시스템이 망가진 주니치나 롯데, 훈련시설이 열악한 세이부, 신인들의 무덤이자 포스팅은 죽어도 허락하지 않는 요미우리 등이 지명하는 경우 입단을 거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등 여러가지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 중순 들어와서는 거의 매일 어느 팀이 지명할까 가지고 스포츠 뉴스에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래프트를 몇 시간 앞두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은 키요미야 지명에 대한 추첨을 성공하게 해 달라고 메이지 신궁까지 참배했다고 한다(…)

    닛칸스포츠의 예상에 따르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치바 롯데 마린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총 7개 팀이 키요미야를 1차지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언급된 7개팀이 모두 1차지명했고[47] 추첨을 통해 대어가 나오면 지명거부한다해도 지명하는 홋카이도 닛폰햄이 제비뽑기에 성공해 교섭권을 획득! 이미 메이저로 가겠다는 오오타니를 설득해 일본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육성시킨 전례가 있으며 선수의 해외진출에 적극적인 닛폰햄 구단 이기에 무난하게 입단할것으로 보인다.

    2017년 드래프트 2라운드는 퍼시픽리그 꼴찌 롯데부터 지명을 시작하여 센트럴리그 1위 히로시마가 제일 마지막에 지명한다. 3라운드는 히로시마부터 시작하여 롯데까지 지명.
    그리고 각 팀별로도 드래프트에 따른 색깔이 존재하는데, 좀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은 야구 팬들은 관련 글을 참조하길 바람.

    위키백과

    드래프트 특성상 꼭 상위픽이라고 성공하고 하위픽이라고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치바 롯데 마린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후쿠우라 카즈야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로 지명되었는데, 이 해에 7라운드 지명에 참여한 구단은 치바롯데 딱 한 곳이었다. 즉 전체 최하위 픽이었던 셈. 하지만 그 해에 뽑힌 입단 동기 7명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프로 생활을 해오면서 롯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50]

    4.2. 페넌트레이스 및 교류전

    페넌트레이스는 2015년부터 팀당 143경기를 소화한다. 14시즌까진 144경기 체제였다. 같은 리그 팀과는 25경기씩 토탈 125경기를 치르고, 나머지 18경기는 다른 리그와 교류전(3연전*6팀, 홈팀은 홀/짝해마다 바뀐다.)을 치른다. 덕분에 오히려 KBO 리그보다 1경기가 더 줄어들게 되었다(!). KBO의 경우는 128경기 체제였다가 2015년 kt wiz가 참가하며 144경기로 늘었기 때문.

    교류전은 2005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2005, 2006년은 36경기씩(6팀*3연전*홈&어웨이) 치러졌으나 센트럴 리그 5개 구단의 반발로[51] 2007년부터는 24경기로 축소되었다. 그러고도 2연전 체제라서 중간중간 이동일 및 휴식일이 너무 많고 기간에 비해 경기소화가 적으며 너무 늘어져서 관중들의 흥미가 반감된다는 이유를 들어서 2015년부터 다시 18경기로 축소하였다. 사실 이것도 교류전의 결과가 2연전 체제와 잦은 휴식 때문에 에이스급 투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이들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퍼시픽리그에게 유리하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이다.

    4.3. 비디오 판독

    NPB는 기본적으로 심판의 권위를 매우 존중한다. 그래서 비디오 판독이 거의 없다. 그나마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의 경우도 홈런 / 파울, 홈 충돌 방지 판정[52]에서나 사용하며, 각 팀의 홈 경기장이 아닌 지방구장 경기에서는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2016년이 되어서야 가능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오심도 굉장히 많아서 일부 일본 팬들은 바다 건너에서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자고 난리를 치는 중. 실제로 2014년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가 한신 타이거스에 끝내기를 맞고 진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오심이 발생한 적이 있어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승엽과 이대호는 홈런 하나씩을 손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2017년 닛폰시리즈 2차전에서는 이 비디오 판독으로 인해 승부가 뒤바뀌었다! 그날 따라 비디오 판독이 2번이나 일어났다. 비디오 판독이 가능한 케이스가 딱 두 상황인데 그 두 상황이 모두 일어난 것.[53]

    4.4. 지방구장 경기

    일본프로야구는 각 팀들의 홈구장 주변 연고지 혹은 연고지 외 지방의 구장에서 치르는 일명 ‘출장시합’이라는 홈경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있다. 출장시합은 세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연고지 내 기존 홈구장외의 야구장에서 홈경기 개최,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 개최, 다른 구단들의 홈 구장에서 홈경기(!) 개최가 있다. 이러한 출장경기는 연고지 밀착, 옛날 홈구장, 시장 확대 등 여러 이유로 치뤄진다.

    연고지 내의 타 구장 홈경기의 사례로는 홋카이도 연고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오비히로, 하코다테 등), 후쿠오카 연고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규슈 경기(기타큐슈,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 사이타마 연고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미야 경기가 있다. 매년 고정으로 열리는 구장[54]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장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올해 했다고 다음 해에도 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매 시즌 일정표에서 이를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비슷한 예로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의 포항이나 롯데 자이언츠의 울산, 한화 이글스의 청주 등이 있다.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마츠야마, 시즈오카, 후쿠시마 경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키나와 경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후 경기 등이 있으며 한 해에 같은 구장에서 서로 다른 팀의 홈 경기가 열리는 사례도 있다. 2012년의 경우 4월 21일, 22일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의 홈 경기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도호쿠 라쿠텐의 2연전이 가고시마(21일), 구마모토(22일)에 열렸는데 4월 25일, 26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요코하마 DeNA의 2연전이 구마모토(25일/우천취소), 가고시마(26일)에서 열렸다. 또한 아키타에서는 5월 12, 13일엔 도쿄 야쿠르트의 홈 경기로 도쿄 야쿠르트-요미우리 2연전이 열렸고 8월 28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주니치 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첫 정규시즌 경기가 6월 26일, 27일 요코하마 홈경기로 요코하마 DeNA-도쿄 야쿠르트의 2연전으로 나하에서 개최되었다. 윗 문단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올해 열린 제3지역 경기가 내년에도 열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이것을 능가하는 다른 구단의 홈 구장에서 홈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지역의 팬들과 연고이전 이전의 팬들을 위해 치루는 이유가 크다. 대표적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도쿄돔[55] 경기,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가 있으며, 2017년 일정에서 소프트뱅크의 홈경기를 도쿄돔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요미우리는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렸으며[56], 심지어 1999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 같은 경우에는 호크스와의 홈경기를 호크스의 홈인 후쿠오카 돔에서 치른 적도 있었다(…) 2008년과 2012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교류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 치르는 홈경기를 호크스의 텃밭인 규슈의 기타큐슈(2008년, 2012년)와 오이타(2008년)[58], 나가사키(2012년)에서 치르기도 했다. 2016년 4월 19일부터 20일까지 요미우리는 규슈 출장으로 각각 구마모토와 가고시마에서 주니치와의 홈 경기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인하여 두 경기가 모두 취소되고 정작 자신들의 홈 구장인 도쿄 돔에서는 라쿠텐과 오릭스의 경기가 개최되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팀의 프랜차이즈 보호구역에서 경기를 개최할 경우 그 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야구에서도 일본과 대만이 워낙 각별한 사이인지라 2002년에는 다이에와 오릭스가 대만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장거리 원정에 지친 선수들의 불만으로 그 때 한해 치르고는 그만 뒀다. 또한 이승엽이 치바 롯데에 소속되어 있던 2005년에는 롯데 측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를 문학과 사직에서 한경기씩 치르는 계획도 추진했으나 흥행가능성의 문제를 들어서 취소되기도 했다.

    기후 나가라가와 구장 개장 첫 장외홈런을 친 장종훈, 오비히로에서 홈런을 친 이대호를 제외하고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인 타자들은 지방구장에서 홈런을 친 적이 없다.

    대표적 지방경기로는 아래와 같이 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교세라 돔 오사카 – 간사이권 팬들을 위해 매년 1~2회 개최
    • 한신 타이거스 : 교세라 돔 오사카 – 고시엔 기간 및 홈 개막전 개최, 머스캣 스타디움 – 매년 1~2회 개최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기타큐슈 시민구장 – 매년 2회 개최, 교세라 돔 오사카 – 난카이 호크스 시절 팬들을 위해 개최, 도쿄돔 – 도쿄 팬들과 회장님 및 모기업 사원들을 위해 개최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도쿄돔 – 도쿄 팬들을 위해 매년 10회 이하 개최,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하코다테 등) – 홋카이도 지역 팬들을 위해 개최
    • 오릭스 버팔로즈 : 홋토모토 필드 고베 – 블루웨이브 팬들을 위해 매년 20회 이하 개최

    4.5. 올스타전

    경기는 매년 2~3경기를 치른다. 경기수는 매년 시즌 일정 정할 때 마다 새로 정하므로 무슨 규칙이 있어서 어떨때는 2경기 어떨때는 3경기 이런식으로 정해져 있는건 아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 3경기를 치르고 해당 수익금을 일본올림픽대표팀의 후원금으로 기부한 경우도 있다.

    또한 각 포지션별 올스타 투표는 별 차이가 없지만, 투수부문에서는 선발-중간-마무리로 나눠 투표한다.

    4.6. 외국인선수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를 스켓토(助っ人)라 부른다. 즉, 직역하자면 도우미 정도의 의미. 한국에서 용병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외국인선수 제도를 뒀는데,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 재일교포 선수들이 활약했던 것과 유사하게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주로 일본계 미국인들이 활약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나미네 카나메.

    현재 구단이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선수는 육성선수를 포함하여 제한이 없다. 따라서 즉시 전력감에 치중하는 한국과는 달리 육성형 선수나 보험용 계약도 많은 편이다.[59] 1군에는 4명까지 등록할 수 있으며(2002년 변경) 투수 4명, 타자 4명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투수를 3명을 등록하면 투수 등록이 더 이상 불가능하며, 반대로 타자 3명을 등록했으면 타자를 더 등록할 수 없다.

    또한, 특정 조건을 만족한 외국인 선수는 국내 선수로 취급되어 외국인 선수 제한에서 제외된다.

    • 1.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간 뛰며 FA 자격을 얻은 선수.
      대표적인 선수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알렉스 카브레라가 있다.
    • 2. 일본 국내에서 고교 이상의 학력 과정을 보냈고 드래프트 신청 직전 학력을 일본에서 이수했으며 드래프트를 거친 경우.
      이 예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장훈이나 김일융등의 재일교포 선수들[60], 대만 출신의 요다이칸,(후쿠오카제일고-닛폰햄) 한국에서 태어나고 야구를 시작했다가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가서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2008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김무영(하야토모고-후쿠오카경제대-후쿠오카 레드와블러스)[61]과 신성현(교토국제고)[62], 브라질 출신의 루시아누 페르난두(하쿠오대[63])가 있다. 2017년에는 키수 데수자 펠리페라는 브라질 출신 선수가 오릭스 버팔로즈에 육성선수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 3. 일본 내의 대학에서 4년 이상 재학한 선수
      대만 출신의 다이호 야스아키(나고야대학-주니치), 브라질 출신의 라파엘 페르난지스(하쿠오대학-야쿠르트)가 있다.
    • 4. 일본에 5년 이상 거주 한 후, 사회인 야구 팀에서 통산 3년 이상 재직한 선수.
      일본계 브라질인 다마키 시게오(미쓰비시자동차가와사키-히로시마)가 있다.
    • 5. 항목 3, 4의 필요한 연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드래프트를 거쳐 입단 후 학교의 재학 기간과 일본 프로 야구의 재적 기간을 합쳐 5년 이상 경과한 선수.
      주니치에 잠시 몸 담았던 송상훈이 있다.

    4.6.1. 2018년 시즌 외국인선수

    NPB는 외국인 육성선수도 있다보니 육성선수를 구별하기 위해 정식 선수에게만 볼드체를 씌움.

    4.6.1.1. 센트럴리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한신 타이거즈 : 마르코스 마테오(투수, 도미니카 공화국), 랜디 메신저(투수, 미국), 라파엘 돌리스(투수, 도미니카공화국), 뤼옌칭(투수, 대만), 디에고 모레노(투수, 베네수엘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스펜서 패튼(투수, 미국), 조 윌랜드(투수, 미국), 호세 로페스(내야수, 베네수엘라), 에디슨 바리오스[64](투수, 베네수엘라), 네프탈리 소토(1루수, 푸에르토리코)
    • 주니치 드래곤즈 :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크리스 존슨(투수, 미국), 브래드 엘드레드(1루수, 미국), 재비어 바티스타(1루수, 도미니카 공화국), 알레한드로 메히아(내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4.6.1.2. 퍼시픽리그
    • 치바 롯데 마린즈 : 천관위(투수, 대만)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마이클 톤킨(투수, 미국)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프랭크 허먼(투수, 미국), 젤러스 휠러(3루수, 미국), 자펫 아마도르(지명타자, 멕시코), 카를로스 페구에로(외야수, 도미니카 공화국), 쏭지아하오(투수, 대만)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궈쥔린(투수, 대만), 브라이언 울프(투수, 미국), 에르네스트 메히아(1루수, 베네수엘라),
    • 오릭스 버팔로즈 : 크리스 마레로(외야수, 미국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리반 모이넬로(투수, 쿠바), 릭 밴덴헐크(투수, 네덜란드), 데니스 사파테(투수, 미국), 로베르토 수아레스(투수, 베네수엘라),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외야수, 쿠바), 오스카 코라스(외야수, 쿠바)

    매년 일본에서 실패한 용병이 2~3명씩 다음 해나 다다음 해에 한국으로 오기 때문에 이 중 몇 명은 분명히 2019, 2020년 KBO에서 볼 수 있을거니까 잘 알아두자.

    4.7. 포스트시즌

    4.7.1.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을 야구인 플레이 오프는 클라이맥스 시리즈(Climax Series)로 불린다.

    퍼스트 스테이지(1회전)에선 3전 2전승제로 하고 파이널 스테이지(2회전)에서는 1위팀과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리한 팀이 7전 4승제로 붙는데, 1위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를 주기 때문에 1차전을 이미 이긴 것으로 간주하여 실제로는 6전 게임이 된다.[75] 그리고 원정팀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는 모든 경기를 순위상 높은 순위에 있는 팀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일정상 유리하고.(이동일 하루를 빼지 않는다.) 야구가 홈팀 어드밴티지가 큰 스포츠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긴다면 9회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순위 좋은 팀이 유리한 규정. 그리고 혹여나 무승부 경기가 나와서 동률이 되어버리면 그냥 순위높은 팀이 진출한다.

    사실 센트럴 리그에서 교류전(인터리그)와 더불어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굉장히 심하게 반대를 했는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보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규시즌 1위팀의 상징성이나 특권이 없어지므로써 야구의 순수성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동의하면서 거기에 정규시즌 1위팀에게 유리한 조건을 달은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얘기일 수 있다.

    4.7.2. 일본시리즈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 시리즈)는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7전 4전승제로 일본시리즈에서의 홈 어드밴티지는 홀수해에는 퍼시픽리그, 짝수해에는 센트럴리그 팀에게 주어진다. 참고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시리즈에서는 15회까지를 연장으로 사용한다.

    5. 팀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NPB.jpg

    ※ 괄호 안은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 – 뒤는 일본에서 줄인 표기[76]와 TV 중계나 언론 매체 등에서 쓰이는 한글자 약호(한자 혹은 가타가나와 영문 한글자 표기). 한자 혹은 가나 표기는 모기업 명에서, 알파벳 표기는 팀 닉네임에서 따왔다. 알파벳 표기는 과거 스타디움 히어로를 해본 사람이면 상당히 눈에 익을 것이다. 회사명 자체로는 해당 구단이 리다이렉트되지 않지만, 일본 현지 중계에서도 공식 사용하고 비교적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한 지역명+기업명 구조 이름은 리다이렉트되어 있다. 다만 중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히로시마 도요로는 리다이렉트할 수 없다.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5회 東京ヤクルト
    ヤクルト
    ヤ, S[77]
    요미우리 자이언츠 21회 巨人[78] 巨, G[79]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회 横浜DeNA
    DeNA
    De(…)[80], DB[81]
    주니치 드래곤즈 2회 中日 中, D[82]
    한신 타이거스 1회 阪神 [83], T[84]
    히로시마 도요 카프 3회 広島[85] 広, C[86]
    퍼시픽리그(Pacific League)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회 東北楽天
    楽天
    楽, E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3회 埼玉西武
    西武
    西, L[87]
    오릭스 버팔로즈 4회 オリックス [88], Bs[89]
    치바 롯데 마린즈 4회 千葉ロッテ
    ロッテ[90]
    [91], M[9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8회 福岡ソフトバンク
    ソフトバンク
    [93], H[9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3회 北海道日本ハム
    日本ハム
    日, F
    해체된 팀
    팀명 일본시리즈 우승 약칭 약호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0회 大阪近鉄
    近鉄
    近, Bu[95]
    • 과거의 구단들에 관한 정보는 과거의 팀들항목 참조.

    5.1. 16개 구단으로 확대?

    현재 일본프로야구는 양대 리그제를 실시하여 각각 6구단씩 총 12구단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4구단을 늘려 16구단 체제로 하자는 떡밥이 살포되었고, 최대 정당인 자민당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정부가 구단 신설을 지원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은 현재 프로구단이 없는 시즈오카 현, 시코쿠 지방(도쿠시마·가가와·에히메·고치 현), 오키나와 현, 호쿠신에쓰(北信越) 지방(도야마·이시카와·후쿠이·나가노·니가타현)을 새 구단의 근거지 후보로 예시하고 정부에 지원책 검토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시된 지역들은 위에서 언급한 지방구장 경기가 열리는 곳들이기도 하다.

    사실 현 12개 구단 체제에서 4개의 신생구단이 추가로 참여하는 안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 선수회의 파업과 단일리그 개편안 철회 이후 전문가들이 일본프로야구 활성화 방안으로 거론했던 대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시 라쿠텐과 라이브도어 간 ‘신규참여’ 쟁탈전 때 선수단 운영비용에 관한 우려도 있었던지라 운영비용과 창단준비에 큰 부담이 있는 NPB 신생팀 창단보다는 독립리그 운영 쪽으로 선회를 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시코쿠),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조신에츠·호쿠리쿠 지방), 베이스볼 퍼스트 리그(간사이 지방) 등의 독립리그이다.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나온 리그 확장안과 독립리그가 설립된 지역과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 디비전 1도 18구단이나 있다. 또한 일본 인구의 절반 이하인 한국에서도 2015년부터 KBO 리그가 일본프로야구(12구단)에 필적할 수준인 10구단 체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일본프로야구가 구단 네 개 정도 더 늘리는 것이 절대 무리가 아니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 지원책만 가지고 기업들이 쉽게 구단 창설에 뛰어들지 미지수이다. 또한 한국프로야구에서도 1군 구단 수를 9~10구단으로 늘릴 때 논란이 되었듯이, 갑자기 구단 수를 늘리면 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당연히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과연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바라는 지역에 구단이 들어설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한국도 구단 수를 늘릴 때 가까운 곳에 연고(1군의 제1 홈구장 기준) 구단이 없던 강원도·전라북도·제주도가 아니라 인근에 기존 팀들이 있던 경상남도 창원시[96](NC 다이노스)와 경기도 수원시[97](KT 위즈)가 연고지로 선정되었다. 인구가 적어 관중 동원력이 떨어지는 지역에 구단을 세우는 것은, 구단을 세우려는 기업도 꺼리고 협회도 꺼리기 때문.[98] 결국 이래저래 정말로 16구단 체제가 출범하게 될지는 당분간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마이너리그, KBO 리그의 KBO 퓨처스리그처럼 2군이 활성화 되어 있다. 일본프로야구의 2군도 2개의 리그로 나뉘어 져있으며 각각 이스턴리그, 웨스턴리그로 나눠서 구성되어 있다. 이스턴리그는 센트럴 리그에서 운영하며 웨스턴리그는 퍼시픽 리그에서 운영하지만, 소속팀은 1군의 소속 리그와는 별개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에 창단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2군이 이스턴리그에 참가하면서 이스턴리그는 7개팀, 웨스턴리그는 5개팀이 운영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2군항목 참조.

    7. 참조 항목

    • 사와무라상
    • 컴백상
    • 골든글러브(NPB)
    • 베스트나인
    • 야구
    • 야구팀 관련 정보
    • 야구 관련 인물(NPB)
    • 명구회
    • 프로야구 마스터스 리그
    • 10.8 결전
    • 10.19
    • 오늘도 졌다

    8. 현재 한국 선수

    1995년 이후 무려 22년만에 단 한명도 없다. 새로운 선수가 갈때 마다 추가바람

    9. 둘러보기

    아시아의 야구리그
    파일:external/s20.postimg.org/KBO1.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76px-NPB_logo.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CPBL_logo.svg.png 파일:wiWFShK.jpg
    KBO NPB CPBL CBL
    일본의 야구리그
    구분 명칭
    프로 1군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 퍼시픽리그
    2군 일본프로야구 2군
    사회인 도시대항야구대회
    사회인야구 일본 선수권대회
    지구연맹 주최대회
    전일본클럽야구선수권대회
    독립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프로야구 마스터스 리그
    베이스볼퍼스트리그
    대학 전일본대학야구선수권대회
    메이지진구야구대회
    고교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외 8개 대회


  • ‘야구의 신’ 김성근 야구는 끝났을까

    ‘야구의 신’으로 불렸던 김성근(75ㆍ사진)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니폼을 벗었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 23일 “김 감독이 구단과 코칭스태프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김 감독 해임은 구단에서 먼저 제안했다는 게 야구계 안팎의 정설이다.

    지난 2014년 가을, 7,000여명의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데려오라’는 인터넷 서명에 참여하고 일부는 한화그룹 본사에서 1인 시위를 할 정도로 김 감독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2015년 부임 뒤 첫 시즌에서 한화는 2년 만에 3연전 경기를 모두 쓸어 담는 등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급기야 ‘중독성 있는 한화 야구’를 뜻하는 ‘마리한화’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순위는 6,7위에 그쳤고, 김 전 감독은 선수 혹사와 지도력 논란에도 휩싸였다. 결국 김 전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프로팀 7곳에서 모두 해임됐다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과 함께 그라운드를 떠났다.

    야구하기 위해 한국 행 택한 재일교포 2세

    야구선수시절 김성근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전 감독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다. 공터만 있으면 아이들과 모여 야구를 했던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야구 명문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일찍 떠나 보내고 늘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형편에선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학비가 저렴한 가쓰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 학교에도 야구부가 있었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당시 이 학교 고3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면서 던질 만한 투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른 새벽 우유와 신문배달을 마치고 늦은 밤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그랬던 그는 1959년 재일교포학생야구단으로 한국 방문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고교 졸업 이후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 있던 그가 국내 동아대학교로 스카우트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한국 프로야구에 몸을 담게 된 그는 1961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국가대표에 이어 실업팀인 기업은행 창단 멤버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운 그는 1964년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각오하고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택했다. 잘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김성근의 야구’를 평가해 준 한국에서 공을 던져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과욕이 화를 불렀다. 지나친 연습으로 어깨 부상을 당한 그는 1969년 27세라는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의 길을 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최연소 감독 김성근’이란 또 다른 야구인생으로 들어섰다.

    태평양 돌핀스, SK 와이번스, 고양 원더스

    김성근 전 태평양 돌핀스 감독이 허정욱(왼쪽) 투수에게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는 ‘꼴지를 일등으로 만드는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따라붙었다. 말 그대로 꼴지 팀을 1등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하위권을 맴돌던 팀들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그의 용병술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시작은 태평양 돌핀스였다. 1989년 그가 부임한 뒤 당시 만년 꼴찌로 찍혀있던 돌핀스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 해 정규시즌에서 3위 오른 돌핀스는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정규리그가 끝난 뒤 최종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경기)에 진출했다. 무명의 신인 투수 3인방(박정현, 최창호, 정명원)을 개인 기량에 맞춘 엄청난 양의 훈련으로 국내 프로야구의 간판 투수로 올려놓으면서 가져온 성과였다. 1996년 지휘봉을 잡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부터 1군 정규리그에 참가했지만 매년 하위권을 떠돌았던 레이더스는 그가 부임한 이후 2년 연속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다.

    그의 전성기는 2007년 부임한 SK와이번스 시절이다. 2006년 시즌 6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던 와이번스는 이듬해 그를 만나고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와이번스 창단 첫 우승이자 김 감독의 프로 감독 재임 후 첫 우승이었다. 이후 김 감독이 구단과의 마찰로 2011년 해임되기까지 4년간 와이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 3번, 준우승 1번의 기록을 세웠다.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SK경기에서 승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K와이번스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이런 성과는 두 가지의 철저한 원칙에서 비롯됐다. 첫째는 ‘더럽든 지저분하든 이겨야 한다’였다. “스포츠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고, 고생 해서 이룬 성과를 즐기는 것이 야구의 재미”란 게 그의 지론이다.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선수들을 등판시키는 ‘벌떼야구’가 그의 전매특허가 된 이유였다. ‘재미가 없다’ ‘승부에만 집착한다’는 비난도 따라왔지만 그는 기꺼이 감수했다. 시합이나 연습 상황을 선수별로 깨알같이 적어 분석하는 김 감독 특유의 ‘데이터야구’ 역시 승리를 향한 집념이다.

    두 번째 철칙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였다. 그는 “사람의 잠재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50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를 잘 훈련하면 100, 2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그의 이런 생각은 혹사 논란을 일으킨 ‘지옥훈련을 통한 체질개선’으로 이어졌다. 현재 KT위즈 소속의 이진영 선수는 “SK와이번스 시절 일본 고치현 바닷가에서 동계훈련을 하던 중 너무 힘들어 부러진 방망이들로 뗏목을 만들어 도망을 가는 상상까지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성근 전 감독이 지난 2014년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고양원더스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김 전 감독은 훈련이 ‘선수에 대한 최상의 애정표현’이라 생각한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인 ‘잠자리눈깔’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파악해 개개인에 맞는 훈련을 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때문에 선수들 중엔 그의 혹독함을 고마워 하는 사람도 있다. SK와이번즈의 최정 선수는 김 감독과의 훈련에 대해 “감독님과 훈련하고 나면 완전히 탈진해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지만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비로소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은퇴한 신윤호 투수는 “감독님 만나기 전까지 나는 죽은 나무였다”며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가꾸고 살려놓은 감독님 덕분에 야구판에 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철학은 2012년 한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인 고양원더스의 감독 부임과 함께 빛을 냈다. 원더스는 프로구단에 입단하지 못하고 야구를 포기했던 선수들을 모아 ‘패자부활전’을 꿈꾼 팀이다. 김 감독은 ‘훈련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고강도의 훈련을 실행했다. 비록 경영난으로 3년만에 해체됐지만, 원더스를 거친 선수 30여명이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감독은 아버지다’ vs ‘꼰대 야구’

    그는 언제나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버지다’고 강조한다. 김 감독은 자식이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감독 역시 선수들이 혼자 스스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선수들에게 천 개가 넘는 펑고(수비연습을 위해 배트로 공을 쳐 주는 것)를 직접 쳐 주는 것도, ‘사적인 정이 생기면 정신력이 약해진다’며 선수들과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의 ‘권위주의적 부성애’는 그러나 2015년 한화이글스 부임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신이 한화에 승리를 가져다 줄 것’ 이라는 팬들의 강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김 감독이 들고 나왔던 건 역시 ‘체질개선’이었다. 일본 최고의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초등학교 시절 매일 2,000개의 특별타격훈련을 했다는 것을 예로 들며 ‘고생을 넘으면 성공’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의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주력 투수들을 끊임없이 기용하는 방식으로 난국을 극복하려 했다. 결국 부담이 가중되면서 김민우 선수는 어깨부상으로, 권혁이 팔꿈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선수들의 ‘혹사’가 김 감독에 의해 ‘투혼’으로 포장됐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여기에 빈볼(고의로 머리를 향해 던지는 공)과 사인 훔치기 등 비신사적 작전, 베테랑 선수 영입에 치중해 유망주를 내보내는 결정 등까지 겹치면서 도마에 올랐다. ‘아버지’의 이면에는 선수의 건강ㆍ자존심보다 승리를 중시하는 과도한 성과주의가 숨어있었다는 비난에서였다. 많은 팬들은 ‘김성근의 야구는 끝나야 한다’ 고 외쳤고 그는 한화 유니폼을 벗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졌다.

    지난 2013년 당시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 김 감독이 청와대, 대기업 임원 등의 초청을 받아 리더십 강연을 할 때마다 강조한 덕목이다. 비난이 쏟아져도 타협하지 거침없이 달려온 ‘김성근식 야구’는 적어도 한화에서는 끝이 났다. 하지만 노장의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선수에게 두 번째 공은 없다)’ 다. “단 한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철저히 다음을 준비한다”는 그의 야구가 정말 막을 내린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한화, ‘제31회 한화기차지 초∙중∙고 야구대회’ 개최

    한화이글스는 11월 8일(화)부터 청주야구장 등 3개 경기장에서 ‘제31회 한화기차지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한다.

    한화기차지 야구대회는 연고지역의 야구 저변 확대와 아마추어 야구 발전을 위해 구단 창단해인 1986년부터 진행되어 올해로 31회째를 맞게 되었다.

    이번 대회는 11월 8일(화)부터 11월 11일(금)까지 4일간 초등부 12개팀, 중등부 11개팀, 고등부 8개팀이 참가하여 외천 야구장, 세광고 야구장, 청주야구장에서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회 시상식은 11월 11일(금) 고등부 결승전 종료 후 청주야구장에서 실시할 예정이며, 대회 우승 및 준우승 팀에게는 총 1,000만원 상당 규모의 야구 용품을 지급할 계획이다.

    한화이글스는 구단 창단해인 1986년부터 한화기차지 야구대회를 진행하여 올해로 31회째를 맞게 되었으며, 야구대회 뿐 아니라 연고 지역의 초∙중∙고 야구부에 야구용품 지원 및 사회인 야구 대상 베이스볼 아카데미 개최 등 지역 아마추어 야구 발전과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세계의 야구” 세르비아 야구의 도전과 갈등 발칸 베이스볼 현황의 이것저것 ‘세르비아 야구 팀 소개’

    야구 선수가 300명.마을의 소년 야구 대회의 입장 행진 정도의 인원수이지만, 무엇을 숨기자, 어른이나 아이도 맞춘 세르비아에 있어서의 야구의 경기 인구이다.결국은, 초마이너 스포츠인 것이다.정도의 차이야말로 저것, 중동유럽 제국은 비슷비슷함의 현상이라고 말해 지장없을 것이다.

    30년 정도 전에 세르비아에 야구가 「전해져」이후, 경기 인구는 지리지리와 증가하고는 있지만, 큰 확대를 보이는에는 이르지 않았다.신참 스포츠가 시민권을 획득해 가는 것은, 역시 이만 저만으로는 없는 것 같다.그런데도, 조금씩 팀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기쁠 따름이다.
    2017년 현재, 세르비아에는 5개의 클럽 팀이 있다.세르비아 국내 리그가 90년대 초두에 2 팀에서 스타트한 것을 생각하면, 4반세기 정도의 사이에 3 팀 증가한 것이 된다.이것이 「보급」으로서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는 의견이 나뉠 것 같지만, 적어도 후퇴는 하고 있지 않다.여담이지만, 유럽에는 이른바 「학교 스포츠」라고 하는 것이 없고, 스포츠 활동은 지역의 클럽 팀이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클럽 팀을 소개하자.

    베오그라드 96

     초창기의 2 팀이 합병해, 96년에 설립되었다.거점은 수도의 베오그라드시.세르비아를 대표하는 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작년, 인터 리그(중동유럽의 지역 리그)의 풀 B로부터 A에 승격해, 올해는 보다 레벨의 높은 팀에 비비어져 분투하고 있다.필자가 선수겸테크니컬 코치로서 다리 써라 7년 정도 소속해 있었던 것도 이 팀이다.


    베오그라드 96 하단 오른쪽에서 2명째가 밀란 주장 상단 좌단이 필자

    보이보디나

     95년에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노비사드시를 거점으로 설립되었다.작년의 세르비아 국내 리그에서는, 선두의 베오그라드 96에 이어 준우승.인터 리그의 풀 B에 2016년부터 참가하고 있어, 착실하게 레벨업해 오고 있다.덧붙여서 Vojvodina는, 세르비아 북부의 지역명.


    보이보디나 상단왼쪽에서 3명째가 고란 주장

    보이보데

     95년에 베오그라드의 근린 도시 젬시를 거점으로 설립되었다.세르비아 대표의 에이스를 껴안아, 타선도 강력하면서, 방비가 과제의 팀.과거에는 세르비아 국내 리그를 억제한 적도 있었지만, 근년은 고전을 강요당하고 있다.덧붙여서 Vojvode이란, 영어로 말하는 Duke.


    보이보데 상단 좌단이 복숭아 주장

     소년 야구팀은 대소 포함해 8정도 있어, 국내에서의 리그전과 토너먼트전에 가세해 U-12, U-15, U-18등의 국제 시합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세르비아 U-15의 대표 선수들

     2017년 시즌부터, 일본인의 타케우치 슌스케 선수가 베오그라드 96으로 플레이하고 있다.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지의 나라의 야구팀에 뛰어들어, 말의 벽을 넘으면서, 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인터 리그에서 던지는 타케우치 슌스케 선수

     요즈음, 몇개의 소프트볼 팀도 탄생하기 시작하고 있어 야구・소프트볼의 저변은 서서히 퍼지고 있다.


    소프트볼 클럽 팀, 와일드 캣츠

     세르비아는 인구 700만명 정도면서, 많은 구기(테니스, 농구, 발리볼, 수구, 핸드볼등 )로 세계의 상위에 랭크 되는 구기 대국이며, 볼을 취급하는 스포츠에는 멸법 강하다.그들 그녀들의 후배들이, 일본의 프로야구나 사회인 리그에서 플레이하거나 세르비아 대표와 사무라이 재팬이 예선을 싸우거나 하는 날이 오는 것을 상상해, 호젠장 미소지어 버리는 것이다.

    다음 번은, 세르비아가 참가하는 인터 리그(중동유럽의 지역 리그)나 유럽 선수권에 대해 전할 예정이다.